'안전 자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금이나 미국 국채 처럼 가치가 보존되거나, 원금이 보존되는 자산들, 또는 달러화, 스위스 프랑, 일본 엔화(아베노믹스 이전의 엔화)와 같이 시장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다른 통화에 대해)상대 가격이 유지되는 통화들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같은 전통적 의미의 안전 자산 가운데 적어도 세개의 자산은 그 지위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스위스 프랑, 엔화, 그리고 금.
스위스 프랑(CHF)을 보자. 스위스 프랑이 '안전 자산'으로서의 명성을 얻은 것은 과거에는 스위스 은행들의 '비밀주의' 때문이었으며, 2008-9년의 금융 위기 속에서는 달러화 가치의 급변동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프랑의 변동폭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2010-2012년의 유로존 부채 위기 시에는 유로화의 붕괴, 또는 가치 폭락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스위스 프랑 대비 달러화 환율 추이 (장기 챠트)
ⓒ글로벌모니터
위의 챠트를 보면, 지난 2014년 중반부터 스위스 프랑 환율은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월 15일에는 스위스 중앙은행의 유로화 페그제(1유로당 1.2 스위스 프랑 floor) 폐기라는 깜짝 조치로 스위스 프랑 환율은 급등락을 한다.
여기서의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일 스위스 프랑이 '안전 자산'이라면 왜 페그제 폐기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프랑은 달러화 대비 급절상/급절하가 나타났는가?
그리고 왜 최근에는 전 고점을 돌파하는 약세를 보이고 있는가? 이를 단순히 스위스 프랑은 달러화만큼의 '안전 자산'은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먼저 지난 1월 유로화 페그제 폐기 이후의 스위스 프랑의 달러화 및 유로화 대비 환율 추이를 보자.
유로 프랑 환율 추이
ⓒ글로벌모니터
달러 프랑 환율 추이
ⓒ글로벌모니터
지난 1월 유로화 페그제 폐기 이후의 스위스 프랑의 환율은 최종적으로는 유로화에 대해서는 강세, 달러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약세를 나타냈다. 만일 유로존의 자금이 스위스로 쏟아져 들어왔다면, 프랑화는 당연히 유로화에 대해서 강세일 뿐만 아니라, 달러화에 대해서도 강세였을 것이다. 왜 달러화에 대해서는 프랑은 약세를 보였을까?
1월의 유로화 페그제 폐기 직후, BNY Mellon 은행의 통화분석가인 Simon Derrick은 유로화 페그제가 "러시아가(의 석유 업체들이) 유로화를 마음껏 구할 수 있는 통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즉 서구의 금융 제재와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 석유업체들의 수입이 감소하자 이들은 스위스라는 중개 창구를 통해 줄어드는 달러화 수입을 프랑화로 환전하고, 프랑화는 유로화에 1.2 프랑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유로화 페그), 이를 다시 유로로 맘놓고 환전하여 유로존의 자산을 매입하는 금융 거래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금융 거래의 장점은 스위스에 중개 기지를 둘 경우에, 세금이 유로존에 비해 지극히 적다는 데 있었다(따라서 원유 판매 수입을 스위스를 경유해 유로로 환전하면 세금 부담이 감소한다).
Derrick은 지난 2014년 12월의 스위스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당시는 -0.25%)도 이같은 이유로 부과되었다고 보고 있다. 즉, 외부(러시아)로부터의 자금 유입을 저지하는 수단으로서의 마이너스 금리였다는 것이다.
스위스 프랑의 페그제의 '역할' 중의 또 하나는 이처럼 유로화-프랑 페그가 유지됨으로써 스위스 은행들이 유입된 달러화를 바탕으로 외부(유로존) 자산을 매입하기가 용이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스위스 은행들은 달러화로 자금을 조달하여 이를 프랑으로, 그리고 다시 유로화로 환전하여 유로존내 자산을 매입했다(스위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16%가 넘는다).
그런 점에서는 스위스의 유로 페그제는 유로존 자산 가격을 지지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ECB가 QE를 시행하면서 유로존 스스로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스위스는 굳이 이같은 우회적 자산 매입책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이는 동시에 스위스 발 자금의 유로존으로의 유입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페그제 폐기 직후 스위스 프랑은 유로화와 달러화에 대해 초강세를 나타냈다(즉 스위스에서의 해외 투자 감소 전망 때문에).
그런데 페그제 이후 한달이 지난 이후의 전개를 보면, 스위스 프랑은 유로화에 대해서는 비교적 강보합권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달러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약세 추세를 보였다(그러다가 지난 목요일부터 급락하기 시작했다).
물론 같은 기간 동안에 유로화는 달러화에 대해 계속 약세를 보였기 때문에 프랑은 유로화를 뒤쫒아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유로존에서 스위스로의 (유로) 자금 유입이 지속되고 있다면 스위스 프랑은 유로화에 대해서만 아니라, 달러화에 대해서도 강세를 보였을 것으로 추론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FT Alphaville은 단지 러시아 석유 업체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스위스는 (러시아 기업들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원유 중개업체들의 근거지이며(최근 부도설로 곤욕을 치른 Gencore도 상장은 런던 증시에 되어 있지만, 본사는 스위스에 있다) 따라서 이들 업체들은 매출은 달러화로 발생하지만, 지불은 프랑화로 이뤄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들 업체들은 미국 달러화 liability와 스위스 프랑 liability를 동시에 갖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Glencore의 경우에는 liability가 10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그런데 유가 하락으로 이들 업체들의 매출이 감소하고 liability에 대한 위험이 증가하자, 이들의 부채를 보증한 스위스 은행들의 포지션이 문제가 된다.
이같은 조건에서 강달러와 달러 유동성 부족 현상이 발생하면 스위스 은행들의 balance sheet에는 상당한 압력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FT Alphaville은 따라서 스위스 은행의 페그제 폐기가 일시적으로 달러화 대비 프랑화 강세를 유도하여 스위스 은행들의 달러화 부족에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흥미롭게도 지난 1월 이후 스위스의 대형은행들의(크레딧 스위스와 UBS) 장부에서 liability가 급감했다(또한 파생상품 포지션도 크게 감소했으며, 크레딧스위스는 2월에 경영진을 교체하고 투자은행 업무보다는 자산관리에 치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말로 해서, 스위스 은행들은 달러화 부족으로 인해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었으며, 스위스 중앙은행이 이를 타개해 주기 위해 일시적으로 프랑화를 급강세로 유도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스위스 중앙은행도 유로화 페그제 폐기 직후, 보유 외환(reserve)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50:50으로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기존에는 6:4로 유로화 비중이 더 높았던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이같은 외환보유고의 구성 비율이 프랑화를 달러화와 유로화 중간에 위치하도록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다른 말로 해서 스위스 중앙은행의 유로화 페그제 폐기는 '유로화 문제' 때문이 아니라, '달러화 문제'(달러 부족 현상)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스위스 프랑의 일시적 강세를 유도해 스위스 민간은행들의 달러화 조달 부담을 덜어주었다는 해석).
규모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스위스가 유로달러(역외 달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유로달러 시장에서의 유동성 창출은 원칙적으로 달러화를 숏치는 것과 동일한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 따라서 만일 달러화 가치가 상승할 뿐만 아니라, 달러화 유동성 자체가 줄어들면 역외 은행들은 이중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런 점에서 지난 목요일/금요일 이틀 동안의 달러 대비 프랑 환율 급락이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함의는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ECB의 12월 회의 결과 전망과 더불어).
즉, ECB 회의 이후에 원자재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미 금요일 시장에서 국제유가는 1% 이상 하락했으며(WTI의 낙폭이 큰 것은 thanksgiving으로 하루를 쉬었기 때문에 이틀치 낙폭을 반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금 값도 크게 하락했다.
만일 달러 유동성이 감소하면, 또는 유로달러를 공급하는 투자 은행들이 포지션을 줄이면, 달러화로 표시되는 금이나 원유와 같은 원자재 가격은 하락 압력을 받는다(달러화 강세로 인한 영향).
또한 이들 원자재 중개 업체들의 부채 부담이 증가하여 보유 자산에 대한 '청산' 압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일시적인 대규모 매도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이것이 골드만삭스가 제시한 유가 배럴당 20달러대 시나리오다).
역설적으로 이같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통화 정책(이른바 차별화)는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다.
연준이 '경제 호조'를 근거로 금리 인상을 주장하거나, 혹은 ECB나 BOJ가 디플레이션 퇴치를 명분으로 추가적인 완화책을 결정할 때마다, 달러화 가치는 상승하며 달러 유동성은 감소한다.
역사적으로는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더라도 반드시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감소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지난 2004년-2006년까지의 연준의 금리 인상 싸이클 하에서는 달러화는 강세를 나타냈지만, 유로달러 시장은 오히려 최전성기를 맞았다(즉 글로벌 유동성은 풍부했다). 그리고 이처럼 역외에서 창출된 '달러'는 다시 미국 내로 유입되어 주택버블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각 국가 사이의 금리 차이가 유동성 정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유도달러 시장이 확장될 수 있는 '글로벌 성장'도 찾을 수 없으며, 규제 조건도 과거와는 달라졌다(달러 유동성 감소의 한 원인이 투자은행들에 대한 규제 강화 때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조건에서는 ECB나 BOJ의 자국 통화 약세 유도 통화정책은 오히려 유로달러 시장에서의 은행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포지션을 축소토록 유도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ECB나 BOJ가 완화적정책을 추구할 수록, 달러화는 강세를 보이며 원자재 가격은 하락하고 그 결과로 물가 수준은 낮아지며(국내 수요가 둔화/감소할 뿐만 아니라, 교역 상대국의 수요도 둔화/감소시키는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다시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고 투자은행들의 포지션을 더욱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런 점에서 ECB나 BOJ의 '완화' 정책은 자산 가격에 대해서는 '완화적'이지만, 글로벌 유동성이나 글로벌 수요 측면에서는 '긴축적'이며, 그 결과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의문은 이같은 중앙은행들의 정책이 단지 역내의 문제들(은행 시스템 이슈나, 무역 경쟁력 제고, 혹은 국내 자산 가격 부양을 위한)을 해결하기 위한 독자적인 정책인지, 아니면 지난 30여년간 국제 금융 체제의 근간이 되어왔던 유로 달러 시장을 완전히 고사시키고(또는 그 기능을 최소화시키고) 중앙은행들의 화폐 통제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합동작전'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유로존과 일본 및 미국의 통화정책의 결과로 인한 각국 통화의 환율 차별화에 대해 재무장관들이나 중앙은행장들은 이것이 '환율전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만일 이들의 발언이 이들의 '의도'를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이라면, 이는 중앙은행과 정책 당국이 통제를 받지 않는 역외 시장(유로달러 시장)을 통제권 내로 끌어들이는데 합의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연준은 '무리를 해서라도' 금리를 계속 인상하려고 할 것이다(또는 불확실성을 최대화시키려 할 것이며).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신흥시장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며, 중국은 미국의 금리 인상을 반대한다는 의사 표명을 명확히하고 있다.
만일 선진국들의 스탠스가 신흥시장을 고려하지 않고 유로달러 시장을 통제권 하에 두려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지난 6년간의 선진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취해 막대한 역외 부채를 지고 있는 신흥시장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고난의 행군길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BIS에서의 중앙은행장들의 연설에는 기존의 spill-over 효과(선진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의 결과로 신흥시장에서 역외 부채가 증가하는 것이나, 그 반대로 선진국의 자금 회수로 신흥시장이 통화위기를 겪는 것)를 상쇄하는 spill-back이 존재한다는 언급이 부쩍 등장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같은 spill-back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문맥상 신흥시장의 미 국채 매도와 중국의 위안화 절하로 인한 국제 금융 시장 동요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spill-back은 신흥시장이 유로달러 시장 고사로 인한 유동성 위기를 대처해나가는 정책 수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 선진국 중앙은행장들은 이같은 spill-back 때문에 연준의 금리 인상이 '의도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은연중에 시사하고 있다.
Spill-over와 spill-back이 어떤 상호 작용을 만들어낼지는 당장 12월 중에 벌어질 ECB의 금리 인하와 연준의 금리 인상, 그리고 예상되는 중국의 위안화 절하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고민스러운 것은 그동안 미국 금융 시장에서 bullish한 입장을 대변해온 Guggenheim Partners의 CIO 스콧 미너드가 금요일자로 미국의 졍크 본드와 bank loan을 매수할 때라고 주장한 점이다.
미국의 크레딧 시장, 특히 졍크 본드 시장은 그동안 투자자들의 일방적 포지션과 경기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딜러들의 포지션 축소에 따른 유동성 감소라는 3중고를 겪었다.
미너드는 증시는 중앙은행들의 완화정책으로 내년 1분기까지도 계속 상승할 것이며, 졍크 본드와 bank loan은 미국 경기가 좋기 때문에 매수할 타이밍이라고 주장한다.
미너드의 매수 주장의 근거는 의문스럽지만, 이같은 주장이 ECB의 정책회의와 OPEC 회의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각국에 이미 통보가 된 것으로 보인다).
미너드의 주장은 ECB 통화정책이나 OPEC 회의 결과가 bull들에게 유리한 것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통하기 힘들다.
특히 크레딧 시장에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은 이들 회의 결과가 달러화 약세/유가 상승으로 나타나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는 금요일 시장에서의 반응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으로 판단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프랑스의 크레딧 아그리콜 은행도 투자은행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유로화 반등을 전망하고 있다).
그래서 궁금증은 다시 스위스 프랑으로 돌아온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이번에는, ECB가 금리를 추가 인하하고 QE를 더 확대한다는데도, 왜 아무런 선제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 스위스 은행들의 달러화 포지션이 어느정도 다 정리된 것인가, 아니면, ECB의 추가 완화책이 예상에 못미치기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ECB는 예상대로 완화적이지만, 연준의 금리 인상이 역대 최고로 완화적인 금리 인상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유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가? 이 안개 속의 스위스 프랑은 과연 안전한 돈인가?
* (미너드의 주장 가운데 Guggenheim Partners의 투자전략팀의 분석 결과 올 겨울의 엘 니뇨로 인한 온난기후 때문에 최대 GDP의 1.5% 추가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역사적 사례 분석은 '날씨'와는 별개로 다른 요인에 의해서 가능한 것으로 본다. 미국의 GDP 계상에서 계절조정치 적용치를 수정했기 때문에 1분기 GDP는 경기가 완전히 곤두박질치지 않는 이상, 시장 예상보다, 아니 실제보다, 더 양호할 것이다).